바람결에 흐르듯

중국 모우평(牦牛坪)과 인상여강(印象 麗江) 공연, 옥수채(玉水寨) 그리고 백사벽화(白沙壁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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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모우평(牦牛坪)과 인상여강(印象 麗江) 공연, 옥수채(玉水寨) 그리고 백사벽화(白沙壁畵)..

노마GG 2018. 3. 29. 12:18

 

■ 2018. 03. 19(5일차) - 2018. 03. 15~20(5박 6일)

■ 모우평(牦牛坪)과 인상여강(印象麗江) 공연, 옥수채(玉水寨) 그리고 백사벽화(白沙壁畵)

■ 아무런 정보없이 관광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깨닫는다. 아무런 지식 정보도 없이 그저 생각없이 둘러보니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고, 그냥 둘러보기에 바빴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가 비로서 문화와 역사를 검색하게 되었고, 비로서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게 되니 흥미가 유발된다. 아쉽고 후회스러운 나의 부족한 점이다. 다음부터는 방문하는 곳의 역사와 문화를 간략하게 나마 공부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모우평 가는 길에 전용버스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이곳에서 전용버스에서 모우평 셔틀버스로 갈아탄다 

▼모후우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모후평(牦牛坪) 운삼평에서 15km 떨어진 모우평은 전체적인 풍경이 운삼평과 엇비슷하며.. 리프트를 타고 해발 3,500m 지점에 내리면 넓은 초원과 함께 티베트 라마교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티베트 사원을 지나 언덕 위로 더 오르면 옥룡설산이 그 어디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리프트 탑승장으로 

▼탑승장 데크

▼넓은 초원과 함께 옥룡설산 그리고 라마교 사원이 보인다

▼옥룡설산과 라마교 사원

▼옥룡설산

▼당겨본 옥룡설산..

▼돌아본 리프트 탑승장

▼티베트 라마교 사원

▼사원을 돌아보고

▼돌아보고

▼당겨본 야크목장.. 이곳까지는 가보지 않았다

▼초원이 푸르게 물들 무렵 옥룡설산의 만년설과 함께 어우러질 때이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옥룡설산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이곳 모우평 초원이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듯 싶다

▼옥룡설산 최고봉인 선자두봉을 배경으로..

▼당겨본 옥룡설산 최고봉인 선자두봉(扇子陡).. / 부채를 닮았다 하여 부채산이라고도 한다

▼선자두봉(5,596m)

▼돌아보고

▼리프트 탑승장으로

■ 인상여강(印象麗江)공연

공연장이 옥룡설산 풍경구 안.. 해발 3,050m 지점에 원형으로 지은 공연장에서 만년설이 쌓인 옥룡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연장 안에 붉은색으로 지그재그 길을 낸 모습은 험준한 차마고도를 상징하고, 1시간 10분 동안 윈난에 사는 10여개 민족, 총 500여 명이 등장해서 장대한 공연을 펼쳐보인다. 장예모 감독의 "인상" 시리즈 중 하나로 다른 "인상" 시리즈와는 달리 낮에 공연하며 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 인상여강 공연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고 여강지역의 소수민족들의 삶의 이야기로서 1처 다부족 남편이 마방꾸려 집떠난 후의 1 여인들의 고달픈 삶과 청춘 남녀의 사랑과 죽음을 줄거리로 한 내용이라고 한다,   

1부(고도마방,古道马帮) : 운남 지방의 차와 생필품을 싣고 티벳과 인도로 교역을 떠나는 마방들과 남아서 찻잎을 따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여인의 애환이 그려진다. 100여명의 남자들이 나와 차마 고도를 출발하며 피혁이나 약초를 싣고 떠나가는 교역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2부(대주설산,对酒雪山) : 험난하고 긴 여정에서 위풍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온 마방들의 술잔치가 질펀하게 이어진다.

3부(천상인간,天上人间) : 이곳 사람들은 옥룡설산에 제3의 세상이 있다고 믿었기에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한 남녀가 옥룡설산으로 들어가 죽음을 택하며 내세를 기약한다는 애잔한 사랑 이야기이다.

4부(타도조합) : 500여 명의 출연자(원주민)들이 전통 민속의상을 입고 관중석으로 입장하여 연주없이 북을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민속춤을 춘다.

5부(고무경천, 鼓舞敋天) : 동파문화의 발원지로서 천여 년의 역사를 갖고있는 나시족들의 하늘 숭배와 자연을 사랑하는 종교의식(동파교)이다.

6부(기복의식, 祈福仪式) :옥룡설산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하늘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의식으로 관중과 함께 옥룡설산에 소원을 빌면서 공연을 끝맺는다.

 

▼공연장 입구

▼공연장 앞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인상여강 공연장으로

▼공연장

▼공연은 시작되고

▼차와 생필품을 싣고 티벳과 인도로 교역을 떠나는 마방들과

▼남아서 찻잎을 따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여인의 애환이 그려지고  

▼100여명의 남자들이 나와 차마 고도를 출발하며 피혁이나 약초를 싣고 떠나가는 교역을 춤으로 표현

▼험난하고 긴 여정에서 위풍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마방들의 술잔치가 질펀하게 이어진다

▼유독.. 너무도 열정적인 공연자가 있어 그 모습을 담아보았다

▼옥룡설산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었기에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한 남녀가 옥룡설산으로 떠나는 모습..

▼관중과 함께 옥룡설산을 향해 소원을 비는 기도의식으로 공연을 끝맺는다.. 나는 아무 것도 빌지 못하였으니

▼공연을 구경한 후 옥수채로 이동 중.. 옥룡설산 풍경구의 감해자(甘海子)에서

▼어느 중국인 관광객과 ㅎ

■ 옥수채(동파교 성지)

옥수채는 나시족 동파교의 성지 중 하나로서 옥같은 물이 흐르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옥룡설산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 이곳으로 흘러든다. 황금신상이 있는 곳의 물을 신천(神泉)이라 부르며 물맛을 볼 수 있고, 물을 버리면 안된다고 한다. 그만큼 나시족은 이곳과 이물을 신성시한다는 의미다. 나시족은 이곳을 여강의 수원, 발원지로 여기고 있다. 이물은 흑룡담으로 흘러들었다가 다시 여강시내를 통과하고 금사강을 거쳐 장강에 합류된다   

 

▼여강원

▼여강원 황금여신상 - 상반신은 여인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뱀의 형상이다

▼만병초꽃

▼야크 고기

■ 백사벽화

나시족은 중국 주(周)나라 때부터 중원의 한족(漢族)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당과 송대에는 남조(南詔)등에 의해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가 명(明)나라 이후 다시 세력이 커져 목부(木府)라는 관청까지 두어 보호를 받았다. 그때, 목부(木府)의 수반(首班)은 나시족 족장(族長)이며 성(姓)이 없었던 나시족 족장에게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 자기 성(姓)을 하사하였는데 나시족 족장은 간편하게 줄여 나무목(木)자 만을 성(姓)으로 썼다. 백사벽화라는 현판이 붙은 목씨 종가 정문을 들어서면 명태조 (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이 보고 반했다는 수령(樹齡) 500년의 버드나무가 있으니 이름하여 경유왕(?柳王: willow tree)이다. 백사(白沙)에 있는 유리전과 대보적궁 내에는명과 청나라 벽화가 보존되고 있다. 백사벽화의 가장 녹륵한 특징은 여러 종교가 하나로 합쳐져 묘사된 것으로 프레스코기법으로 그려졌다. 하나의 벽화 안에 불교를 비롯하여 도교와 라마교의 불상이 함께 담겨져 있는데 이러한 여러 종교가 하나의 회화양식에 융합되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여강벽화는 대연(大硏), 속하(束河), 중해(中海), 양서(漾西), 설숭(雪嵩)등의 마을에 있는 십여 곳의 절과 사당에서도 볼 수 있다.

 

▼백사벽화 정문 

▼백사촌..

▼나시족의 동파 상형 문자 - 리장에서는 동파문자도 사용.. 가게명은 한자와 동파문자를 같이 표기해야 함

수령(樹齡) 500년 버드나무인 경유왕(?柳王)

▼천수관음도(千手觀音圖) 

약 600년전 한족(漢族)의 불교(佛敎), 장족(藏族/티베트인)의 라마교, 도교(道敎)의 선불도(仙佛道)를 합친 회화로서 모택동의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의 야만적이고 무차별한 파괴행각이 있을 때, 백사촌의 촌장인 목씨가 벽화 밖에 모택동 초상을 덧씌워 화(禍)를 면하였다고 한다

우측 하단 사진은 가죽으로 만든 공기주머니(浮囊)를 차고 부교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