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동·슬픈 이야기 (10)
바람결에 흐르듯
■ 고된 삶이 버거워, 이겨내기가 너무 힘들어 집주인에게 밀린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남긴 뒤, 생활고를 비난해 동반자살한 세 모녀의 집이 2월 28일 비워졌습니다. 세 모녀는 지난 26일 오전 8시 30분께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이들 옆엔 타다 남은 번개탄이 있었다. 이 분들이 유서에 남겼던 '죄송합니다'는 우리가 해야할 말입니다. 세 모녀의 짐은 철거업체가 정리했다.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세 모녀가 떠난 자리는 초라했다. 집 구석구석에 먼지 덩어리가 굴렀고 낡고 뜯어진 벽지 사이로 콘크리트가 드러났다. 큰 방은 사람 셋이 누우면 딱 맞을 정도로 비좁았다. 작은 방엔 누렇게 변색된 구식 대형 컴퓨터 2대가 놓여 있는 단출한 살림살이는 이미 세상을 등진 세..
신랑이 늦둥이라 저와 나이차가 50년 넘게 나시는 어머니.. 저 시집오고 5년만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 혼자 4년간 똥 오줌 받아내고, 잘 씻지도 못하고, 딸내미 얼굴도 못보고, 매일 환자식 먹고, 간이침대에 쪼그려 잠들고, 4년간 남편품에 단 한번도 잠들지 못했고, 힘이 없으셔서 변을 못 누실 땐 제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도 거의 매일이었지만 안 힘들다고 평생 이 짓해도 좋으니 살아만 계시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이 멀쩡하셨던 그 5년간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제 나이 33살 먹도록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 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계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제가 10살 때, 집 나가서 소식없는 엄마.. 상습절도로 경찰서 들락날락하던 오빠....
아들아! 결혼할 때 부모 모시는 여자 택하지 말거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말거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거늘... 네 아내가 엄마 흉을 보거든 네 속상한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 말거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고 기분 좋겠느냐 모르는 게 약이란 걸 백번 곱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말거라.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거늘 널 위해선 당장 죽어도 서운한 게 없겠거늘... 네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여라. 너도 네 장모를 위해서 네 엄마만큼 아니지 않겠니?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
김 노인이 75세 황 할머니 73세 두 노인이 만난 것은 재작년 가을 게이트볼 구장에서였지요 김 노인이 먼저 게이트볼을 배웠고 황 할머니가 늦게 배웠습니다. 운동 신경이 둔한 황 할머니는 배우면서 동료 노인들에게 핀잔을 많이도 받았는데... 김 노인은 항상 웃는 낯으로 할머니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사유로 황 할머니는 김 노인에게 친근감을 느꼈습니다. 김 노인은 혼자 아들에게 얹혀살고 있었고 황 할머니는 혼자 살고있는 터였습니다 할머니는 젊어서 공직에 근무한 관계로 연금을 수령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먼저라기보다 의기투합되어 함께 살기로 했고 김 노인이 황 할머니 집으로 옷 몇 가지를 싸들고 이사를 왔습니다 . 두 노인의 삶은 생기가 솟았고 밥 짓고 빨래하는 재미에 새로운 인생을 찾은 것입니다 박 노인이 삽..
꼽추였던 여자와 꼽추였던 남자가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 부부는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혹시나 부모의 유전을 받아 꼽추가 되지 않을는지... 그러나 부부의 걱정과는 달리 무척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꼽추 엄마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살폈고, 착한 아이도 엄마를 잘 따르며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이제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게 된 엄마는 다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철이 들어감에 따라 엄마를 외면할까봐... 그런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한 번도 학교에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도시락을 놓고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고민하기 시작했죠..
난... 작고 볼품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열성인자만 물려받았는지 동생에 비하여 난 항상 뒤쳐졌었다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운동까지 난 동생에게 뒤처졌다. 그래서 항상 난 동생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때문에 난 다른 사람에게 소개를 할 때도 내 이름으로 소개 받기보다는 "누구의 형"이라는 식으로의 소개를 많이 받았다. 이제 내 나이 20. 남들은 다들 좋은 나이라고 한다. 한 번쯤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 약관 20세.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인생 중 가장 최악의 순간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 몰라도 난 여자 친구가 없다. 여자 친구 없는 것이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나에겐 그 것마저 큰 컴플렉스였다. 말 그대로 다들 하나씩 '끼고' 다니지만 내 옆에는 ..
아들 입술이 파랗게 변해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시골의사 박경철씨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 한 이야기인데 너무도 슬픈 이야기라서 옮겨 적어 봅니다 어느 날 노모 한 분이 아들 손잡고 병원에 왔는데.. "아! 농약을 먹었구나..." 농약도 상당히 독한 극약이라는 판단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빨리 위세척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입원을 시키려고 하는데 노모께서 "어떻나?" 하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위세척을 빨리 해야합니다" "그러면 사나?" 하기에" 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위세척은 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필요없다. 돈이 들지 않나.." 하시며 곧 바로 아들 손을 끌고 병원을 나가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에 노모의 모습을 유심히 보니 손등은 검게 타있으며 얼굴은 깊게 주름으로 접혀 있는, 노모의 오..
안녕하세요. 33살 먹은 주부에요.. 32살 때 시집와서 남편이랑 분가해서 살았고요 남편이 어머님 돌아가시고 혼자 계신 아버님 모시자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느 누가 좋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 일로 남편이랑 많이 싸웠어요 위에 형님도 있으신데 왜 우리가 모시냐고.. 아주버님이 대기업 다니셔서 형편이 정말 좋아요 그 일로 남편과 싸우고 볶고 거의 매일 싸웠어요 하루는 남편이 술먹고 울면서 말을 하더군요.. 뭐든 다른 거는 하자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이번만은 부탁 좀 들어달라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남편이 어릴 적 엄청 개구쟁이였데요 매일 사고치고 다니고 해서 아버님께서 매번 뒷수습하러 다니셨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어릴 때 골목에서 놀고 있는데 지나가던 트럭에(큰 트럭 말고 중간 크기 트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