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흐르듯
구례 운조루 고택 본문
■ 2021. 03. 25
■ 구례 운조루 고택
■ 조선 영조 52년 (1776년)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것으로 99간(현존73간) 대규모 주택으로 조선시대 선비 품격을 상징하는 품자형(品字形)의 배치형식의 양반가이다. 류이주는 처음 이사와 살았던 구만들(九萬坪)의 지명을 따 호를 귀만(歸晩)이라 했으며 이 집을 귀만와 (歸晩窩)라고도 불렀다. 운조루는 구름속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란 뜻과 구름위를 나르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도 있으나 본래 이름은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따온 글이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 문구에서 첫머리 두 글자를 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운조루 고택은 좌청룡 우백호 산세와 함께 내수구(앞 도랑)와 외수구(섬진강)가 제대로 되어있는 명당터에 자리잡고 있다. 집 앞 오봉산은 신하들이 엎드려 절하는 형국이라 하며, 연당은 남쪽 산세가 불의 형세를 하고 있어 화재예방을 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일대는 금귀몰니(金龜沒泥), 금환락지(金環落地), 오보교취(五寶交聚), 혹은 오봉귀소(五鳳歸巢)의 명당이 있는 곳이라며, 이 집터에서 거북이 형상을 한 돌이 출토되었기에 금귀몰니 명당으로서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져 있다.
운조루 고택에는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아랫사랑채 등으로 각각 누마루가 있었으나 지금은 아쉽게도 안사랑채와 아랫사랑채의 누마루는 남아있지 않다. 현재는 건평 426.45m²(129평)으로 一 자형 행랑채와 북동쪽의 사당채를 제외하고 T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 안마당의 곡간채가 팔작지붕, 박공지붕, 모임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체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집에 있는 목독(나무로된 쌀독의 마개에 <他人能解>라는 글귀를 써두었음)은 가난한 이웃이 쌀을 꺼내 끼니를 이어갈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음덕을 베풀고 적선을 하는 것이 돈을 가진 자의 도리임을 보여 주었던 류씨 문중의 상징물이다. 200년이 지나도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가문이 번창한 것은 분수를 지키며 생활하고, 이웃을 돌보았던 마음이 전승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류이주의 5세손인 류제양(柳濟陽)은 일만여편의 시(詩)를 쓰고, 손자 류형업(柳瀅業)에 이르기까지 80년간 하루도 빠지지않고 생활일기와 농가일기를 썻다고 하며 이러한 선조들의 유업으로 이어져온 기록문화 등으로 집안의 전통과 내력을 알려주는 듯하다.
▼운조루 고택과 연지
▼할머니께서 이곳에 거주하시며 입장료 1,000원을 받고 계신다
▼행랑채
▼운조루 평면
▼평면도에서 초빈이 가빈터이다
▼운조루(雲鳥樓) - 이 고택(古宅)이 운조루(雲鳥樓)로 불리게 된것도 사랑채의 누마루인 "운조루(雲鳥樓)"에서 가져 왔다
▼물확과 멧돌 - 가운데가 움푹 팬 물확은 돌절구 또는 물을 담아 손과 발을 씻는 등의 용도로 쓰였다.
▼타인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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