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흐르듯
아산 외암마을 본문
■ 2024. 03. 02
■ 아산 외암마을
■ 외암마을 서쪽에 위치한 송악면 소재지 인근에 조선 초기부터 시흥(時興)이라는 역(驛)이 있었다. 이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외양간이 외암마을에 있었다고 하여 예부터 ‘오양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외암’이라는 이름은 바로 오양골의 ‘오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마을 뒤쪽에 설화산(441m)이 있고, 설화산 자락이 동남쪽으로 낮은 산이 되면서 마을 동쪽을 감싸듯 자리잡고 있다.
외암마을은 조선시대 집성마을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어 1988년 전통건조물 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가 2000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집성마을은 종가, 서낭당 장승과 같은 신앙시설, 서원이나 서당과 같은 교육시설, 농경지 방앗간과 같은 생산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록에는 없지만 전해오는 이야기는 500여년 전에 강씨와 목씨 등이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예안 이씨 족보와 이간의 「외암기」에 의하면, 원래 외암마을에는 평택 진씨가 살고 있었다. 지금도 참봉 진한평(陳漢平)의 묘가 외암마을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골말에 위치하고 있으나 언제부터 평택 진씨가 외암마을에 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지금도 외암마을 예안 이씨 문중에서 진한평의 묘를 관리해 오고 있다.
예안이씨가 외암마을에 처음 입향한 것은 진한평의 사위인 예안 이씨 이사종(李嗣宗)이다. 당시 진한평은 아들은 없고, 딸만 셋 있었는데, 이사종이 진한평의 장녀와 혼인하면서 마을에 입향하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마을의 주성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후기에 들어와 외암마을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외암 이간(李柬, 1677∼1737)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뒤는 설화산..
▼설화산 방향..
▼광덕산 방향..
▼설화산..
▼설화산
▼광덕산 방향..
▼광덕산 방향..
▼설화산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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