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흐르듯
서산 해미읍성(사적 제116호) 본문
■ 2024. 03. 01
■ 서산 해미읍성(사적 제116호)
■ 해미라는 지명은 1407년(조선 태종 7년)에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병합하면서 정해현의 해(海)자와 여미현의 미(美)자를 따서 해미(海美)로 부르기 시작하며 유래되었다.
해미는 1414년(태종 14)에 충청도 덕산에서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옮겨온 곳으로, 1651년(효종 2)까지 군사적 거점으로 1491년(성종 22)에 축조되어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성벽 둘레는 약 1.8km, 높이는 일정하지 않지만 대체로 5~6m 정도로 남북 방향이 조금 긴 타원형으로, 북쪽에 구릉이 위치하고, 동문과 서문을 연결하는 도로는 남문 도로와 직각의 ‘T’자를 이루고 있기에 일직선이 아닌 남쪽으로 굽은 형태이다.
다른 일반적인 읍성과 달리 처음에는 고을의 치소가 아닌 병영성으로 축성(세종 초)되었고, 임진왜란 이후 병영을 청주로 옮기고(효종) 현치를 이곳에 둠으로써 일반적인 읍성이 된 특이한 내력을 갖고 있다. 성 외곽에 해자를 설치하고 성 내부는 ‘T’자형 도로를 중심으로 배산(背山) 형식의 구릉 아래 동헌과 객사를 배치하고, 나머지 공간에 민가를 배치하였다.
해미읍성의 그 기능과 모습을 잃게 되는 것은 갑오개혁 이후 대부분 청일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파괴되고 훼손되었으나 대부분 1963년 문화재 지정 이후 복원한 것으로 지방 읍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해미읍성의 동문 잠양루 - 잠양루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74년에 복원되었다.
해미읍성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문루 형식에 팔작지붕을 얹었고, 옹성이 없으며 성문은 아치 모양의 홍예문이다.
▼해미읍성의 정문 진남문 - 진남문은 해미읍성의 세 관아문 중 유일하게 본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회화나무 - 수령 약 300년으로 추정되며 지역주민들에 의해 호야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말기 나무 뒤에 박해당한 천주교 신자를 가두었던 감옥이 있었는데, 1790~1880년 이곳 감옥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 매달아 고문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성을 인정받아 2008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문 장소..
▼동헌
▼내아
▼대나무숲
▼명품 소나무
▼성 외곽 마을..
▼활궁터
▼해미시장에서 순대국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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