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흐르듯

논산 노성산과 노성향교, 명재고택, 궐리사.. 본문

충청남도

논산 노성산과 노성향교, 명재고택, 궐리사..

노마GG 2018. 9. 29. 13:59

■ 2018. 09. 24

■ 논산 노성산

■ 애향공원》옥래봉》노성산》삼종대성전》애향공원

■ 산행거리 :  5km 남짓

■ 산행시간 : 2~3시간

■ 추석날이지만 차례를 지내는 일도 없고, 오후에 가족들 모두가 모이기에 일어나자 마자 가까운 산행지를 찾는다 어제도 속리산을 다녀왔기에 쉴까 생각하였지만 가볍게 산행할 생각으로 베낭도 없이 계룡산을 가장 가까이서 시원스러이 조망할 수 있는 산림청 200대 명산 논산 노성산으로 향하였다. 산행거리도 짧고, 348m의 나즈막한 산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하기에 덧없이 좋은 곳이다

노성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계룡산 풍경은 운해속에서 잿빛 근육을 한껏 드러내며 꿈틀거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노성산보다는 계룡산 조망이 좋고, 가까이에 노성향교, 명재고택, 궐리사 등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어 200대 명산이 아닌가 싶다. 하산길에 갑자기 머리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둘러보니 야생 밤이 땡그르르 굴러가는 것이 아닌가.. 주변이 온통 밤나무 숲이다.

도로에는 밤깐 흔적들이 가득하였고, 간간히 밤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밤들이 눈에 들어오고 떨어진 밤을 따라가며 주우면서 이만하면 됐다 싶으면서도 줍기 바쁘다. 결국 더 이상 담을 곳이 없을 정도로 허리쌕에 가득 채우고서야 허리를 편다.

 

▼개념도

▼트레킹도

▼들머리, 날머리 애향공원

 

▼최근에 들어 노성산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는 듯 싶다..

▼어린시절 시골 풍경을 생각케 한다

▼노성산 정상..

▼노성산에서 바라본 계룡산 방향..

▼잿빛 근육을 한껏 드러내며 꿈틀거리는 계룡산자락이 아름답다..

▼삼종대성전

▼개인사찰인 듯 싶다..?

▼하산길에 널브러진 밤들을 허리쌕에 주어담아 오니 이리 많았다.. ㅎ 내년 추석에도..?

▼약수터

▼애향공원/노성 애향탑..

논산 명재고택..

 명재고택은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이 작고하기 5년 전 제자들이 지은 집으로 역사적 인물로서 윤증을 상징하지만 정작 본인은 끝내 이 집에서 살지 않고, 초가삼간 작은 집에서 하루 두 끼 식사만을 하는 우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윤증은 소론의 영수로서 조정에서 18번이나 관직을 하사했으나 모두 거절해 한 번도 나가지 않았으나 정승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명재는 우암 송시열 제자였으나 후에 아버지 윤선거의 묘비명 사건이 발단이 돼 우암과 사제의 의를 끊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 내용인즉, 명재 부친이 작고하자 우암에게 묘비명을 부탁했는데 우암이 써준 글이 마음에 들지않아 고쳐줄 것을 거듭 청하였으나 우암이 끝내 들어주지 않아 생긴 일로서 이것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되는 계기가 된 ‘회니시비(懷尼是非)’ 사건이다

윤증고택은 흔히들 풍수적으로 ‘옥녀탄금(玉女彈琴)’의 명당이라고 한다. 옥녀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말이다.

옥녀가 뒷산의 옥녀봉을 가리킨다면 거문고는 옥녀탄금의 좌측 무릎 위치에 해당하는 지점에 자리 잡은 평평한 야산에 해당한다.

풍수에서 좌청룡의 자리는 끝 모습이 평평한 야산이 가로놓여 있으면 옥녀탄금이라고 이름 붙인다

▼현재 명재 후손들이 살고 있어서인지 집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명재고택 전독간장..

    전독간장은 30여년간 항아리(독)으로 전해져 내려와 붙여진 이름으로 명재 윤증 종가만의 전통법으로 전수되는 명품이다.

   전독간장과 된장은 2008년 현재 11대 종부 양창호와 큰 며느리 신정숙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담그며 상품화되어 판매되고 있다.

▼초가집 뒤는 노성향교

노성 향교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그 뒤에는 1967년과 1975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만이 전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삼문(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노성향교와 명재고택..

■ 노성 궐리사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으로서 궐리사라는 이름은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한 것이다.

숙종 13년(1687) 우암 송시열이 궐리사를 세우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못하고 2년 뒤 세상을 떠남으로서 숙종 42년(1716) 권상하·김만준·이건명 등의 제자가 현 위치에서 서쪽방향으로 있는 노성산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다음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정조 15년(1791)에는 송조 5현을 봉안하였고 순조 5년(1805)에 관찰사 박윤수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노성 궐리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