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흐르듯
바우하우스(건축의 집) 본문
■ 그란드 듀칼 색슨 예술 아카데미와 그란드 듀칼 색슨 공예학교를 합병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세워 바우하우스(건축의 집)라 불렀으며 바우하우스에서는 그로피우스가 예술의 모태인 건축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았던 여러 가지 수공예를 가르치며 예술(표현)과 기능을 동시에 가르쳤다.
19기 중반 윌리엄 모리스(1834~96)는 목적에 부합되는 디자인과 조화를 이루는 우수한 수공예품을 강조함으로서 미술공예운동으로 이어졌고, 20세기 들어 기계적 생산이 디자인 선결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 학교의 방침을 대량생산 쪽으로 끌고갔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들은 개별 작품보다는 사회에 쓸모있는 작품과 미적 즐거움을 주는 물품을 생산한다는 차원에 노력을 기울였다(대량생산) 바우하우스는 독일공작연맹의 이념을 계승하고, 예술적 창작과 공학적 기술을 통합한 새로운 교육 기관으로서 바이마르, 데사우, 베를린, 뉴 바우하우스까지 4기로 나누어진다
제1기(바이마르 바우하우스)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생겨난 바이마르공화국 때 탄생했으며, 그로피우스가 아르누보 양식과 독일공작연맹의 장점을 고안해 설립한 디자인 교육기관이고, 표현주의의 로맨티시즘 표현을 시도했다.
제2기(데사우 바우하우스)는 우파 정권이 바우하우스 폐쇄를 요구하여 데사우(Dessau) 시장이 데사우로 이전하여 시립화했으며, 수공이 아닌 기계적인 생산을 위한 원형을 제작하여 모던 디자인의 기초가 된 시기이다.
제3기(베를린 바우하우스)는 1930년 세계경제 대공항으로 바우하우스가 폐교 직전이었으며, 1932년 미즈 반 더 로에가 학장으로 취임하여 베를린에서 사립학교로 개교했으나 교수와 학생이 모두 해산되고, 사설 연구소로 전락했다. 특히 나치당에 의해 강제 해산당하고 1년 만에 폐교되었다
제4기(뉴 바우하우스)는 모홀리 나기(L. Moholy-Nagy)가 미국 시카고에서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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