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흐르듯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세계 본문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의 화가로서 관능적인 여성의 육체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1897년 ‘빈 분리파’를 결성하여 반(反) 아카데미즘 운동을 하였으며 1960년에는 ‘오스트리아 화가 연맹’을 결성하여 전시 활동을 시작하였다. 빈 아르누보 운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미술가 중 하나였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수수께끼 같은 화가 입니다.
그는 생전에 자신에 대해 한번도 설명한 적이 없었고, 인터뷰도 하지 않았으며 사생활은 철저히 숨겨졌습니다. 그의 사후 50년 후부터 재평가 되기 시작하더니 언제 부턴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손꼽히게 됩니다. 클림트는 역사상 여성의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성들에 대해 매우 뚜렷한 이분법적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클림트에게 여성은 성녀(聖女) 아니면 요부(妖婦)였다. 직업 모델들은 클림트의 요구에 따라 매우 관능적이고 때로는 외설적이기까지 한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의 모델들이 이런 포즈를 자연스럽게 취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모델의 사이가 단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클림트가 금전적으로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클림트가 죽은 후 사생아를 낳았던 여자들이 생계 부양비를 청구한 소송이 14건 이상이나 된다는 것은 그가 모델들과 얼마나 자유분방한 관계를 맺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렇듯 정을 나눴다고는 하나 클림트가 이들 모델들과 주고받은 것은 철저히 육체적인 사랑에 국한된 것이었다.
■ 벽화
▼The Beethoven Frieze/1902
▼Praise to Joy/1902
▼루트를 연주하는 시
▼Pallas-athene/1898
▼절대적인 힘
▼Expectation 1
▼행복의 추구
■ 여인의 향기
▼Medicine/1897-98
▼Mermaids/1899
▼소니아닙스의 초상화/1898
▼Full-face Portrait of a Lady/1988-99
▼Judith 1/1901
유디트 얼굴의 부드러운 표현이 작품을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잠시 얼굴 표정에 취한 후에야 비로소 작품의 오른쪽 아래 여주인공이 들고있는
홀로 페르네스의 머리를 발견하게 된다.
▼Portrait of Helene Klimt/1898
▼Beethoven Frieze/1902
▼Emillie-Floge/1902
육체적인 사랑을 뛰어넘어 평생을 정신적 사랑의 동반자로 함께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 에른스트 아내의 여동생 에밀리 플뢰게이다.
평생동안 4번 에밀리 플뢰게를 그렸던 클림트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바로 그 해에 첫 번째 초상화 [열일곱 살의 에밀리 플뢰게](1891)를 그렸다.
이중 클림트가 마지막으로 그린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1902)은 에밀리의 초상화로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장식적인 요소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드레스의 우아함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모델에게는 무관심한 척 하며 심리적 거리를 둔 흔적이 나타난다
▼Water Serpents/1904-07
▼Judith 2(Salome)/1909
작품 유디트 2(1909)에서는 그림의 형태를 바꾸고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보다 분명하게 나타냈다
꼭 다문 입술과 가차없이 드러낸 젖가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민하고 긴장된 유디트의 구부러진
손 모양은여인의 잔혹한 마력과 복수욕을 보여준다.
▼마르가레트 스톤보로 비트겐슈타인의 초상
▼프리차 리들러의 초상
■Dadae/1907-08
한편, 클림트는 자신의 성적 환상을 감추기 위해 신화의 주제를 즐겨 사용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에의 이야기는 클림트의 성적인 환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다나에](1907~1908)에 등장하는 다나에는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아르고스를 통치하던 아크리시오스의 딸이다. 아크리시오스 왕은 딸이 낳은 아들한테 살해당한다는 예언을 듣고 남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딸을 탑 속에 가두어 버린다하지만 다나에한테 반한 제우스는 부인인 헤라의 질투를 피해 황금빛 빗물로 변하여 그녀의 다리 사이로 스며들어 사랑을 나눈다. 그 결과 페르세우스가 태어났다.
클림트는 밀실 속에 감금된 다나에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 정사각형 화면 전체에 다나에를 그려넣었다. 다나에는 성적 황홀감에 빠져 있으며 눈을 감고 있다. 왼쪽 아랫부분에는 금색 원형들 사이에 남성성을 상징하는 검은 사각형이 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클림트의 대표적인 작업 스타일인 금박을 사용한 그림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은 화려하며 웅장하다
나치 정권 시에는 히틀러의 소장품이기도 했던 작품이다. 히틀러가 그의 작품 몇 점을 강제로 소유했다고 하는데,
이는 그 당시 화가로서의 클림트의 명성과 인지도를 말해준다. 클림트는 살아 생전에 작품을 통해 부유한 삶을 누렸으며
상류층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고 한다. 상류층과의 교류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이 여인 블로흐바우어였다.
아델로 블로흐바우어는 클림트가 가장 선호했던 모델이자 후원가였으며 클림트와의 염문설이 끊이지 않았던,
엄청난 재벌집의 안주인이었다
▼Hygeia/1907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2
▼Mada Primavesi/1912
▼처녀/1923
▼Elisabeth Bachofen-Echt/1914
▼Lady with Fan/1917-18
▼Serena Pulitzer Lederer
▼붉은 물고기들
■연인
▼베토벤 벽화의 전 세계를 위한 키스/1902
▼Fulfillment/1905-09
▼Love/1985
▼The Kiss/1907-08
두사람은 마치 가공의 세상에 있는 듯합니다. 키스는 1908년 5월 빈에서 최초로 공개 되었습니다
이작품을 당시 엄청남 반응을 일려켰고 오스트리아의 국립미술관에 바로 팔렸습니다
클림트가 키스를 완성한 건 그의 나이 45세로 이미 그는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특히 빨강머리 여자에 집착 했습니다
키스에서는 그림 전체에 황금을 다양하게 사용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의상에서 황금을 볼 수 있고 꽃에서도 황금 이파리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배경도 황금색으로 덮여 있고요 황금잎을 붙이는 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데
클림트는 이 기술을 금과은 세공업자로 일한 아버지에게 배운것으로 추정됩니다
▼Girl Friends/1916-17
▼아담과 이브-미완성/1917-18
▼E-head 2
■우울한 영혼의 풍경화
▼Still Pond/1899
▼아테르제 호수의 섬/1901
▼Tree of Life/1905-06
▼Sunflower/1906-07
▼해바라기가 있는 시골 정원/1906
▼나무 아래 핀 장미꽃
▼Avenue in the Park of Kammer Castle
■ 죽음과 삶
▼Head/1886-88
▼1901
▼법학/1903-07
▼희망 1/1903
41살에 그림 희망Ⅰ(1903)은 배가 부른 젊은 임산부를 표현한 것으로,
화가는 베일 한 장 없이 여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이 그림 속의 여인인 짐머만 역시 클림트의 아이를 낳은 여성이다.
여성의 관능적 아름다움을 생명 잉태의 힘으로 파악하여 어머니의 모습에
요부의 이미지를 오버랩 시켰음을 알 수 있다
▼The Three Age of Women/1905
▼학부회화중 철학 최종판/1907
▼죽음과 삶/1916
▼모자상
▼희망 2
■ 초기작품
▼Fable/1883
▼Youth/1882
▼Idyll/1884
▼부르크극장 내부/1888
▼조각의 우화/1889
▼Ancient Greek/1890-91
▼로덴부르크의 임시무대에 오른 광대/1893-94
▼Two Girls with Oleander
▼조각
■ 기타(작품년도 미상)
▼E-center
▼E-Foot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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